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2024. 11. 19. 21:34

 


최근 시어머님께서 김장하신 김치를 주셨다. 특히 이번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와드리러 가지 못했는데 이렇게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죄송했다.

김치를 가져온 우리는 이 김치통을 냉장고에 어떻게 넣을지 고민했다. 냉장고에서 1/4만큼을 김치냉장고로 쓰고 있는데 이미 이전에 받은 김치들로 좀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 먹지 않아 오래된 김치를 한 차례 정리를 했는데도 또 정리가 필요했다. 이번에 주신 김장 김치가 엄청 큰 통에 주신 것도 한몫했다.

남편이 고르고 골라 정리해야 할 김치통 두 개를 내게 알려줬다. 하나는 양이 얼마 남지 않아 작은 통으로 옮기면 되는 열무 김치였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고들빼기 김치였다. 정말 받고 나서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일전에 우리 부모님 집에 놀러가서 엄마가 남편에게 건넨 질문과 그의 대답 하나로 생긴 고들빼기였다. 남편이 정확히 엄마에게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엄마는 그 대답을 “네, 저 고들빼기 좋아해요.”라고 알아듣고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가 통 하나에 꽉 채워주셨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는 원래 안 좋아했고, 남편도 그 씁쓸한 맛이 나는 고들빼기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한 번은 물었지만 어쩌겠는가. 입맛에 맞지 않아 못먹는 것을…

한 번은 엄마가 내게 또 고들빼기 김치를 담갔다고 줄까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사실 남편도, 나도 즐겨먹질 않는다고. 그래서 이전에 준 김치도 남아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흔쾌히 “그거 오래 됐을 텐데 안 먹으면 버려~”라고 하셨다.
지금이다. 그 고들빼기를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 남편은 “이 고들빼기 김치 어떡하지?”라고 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안 먹으면 버려야지~”라고 했다. 정말 남편을 탓하거나 하는 나쁜 마음 없이 아무 속내 없이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래도 장모님께서 생각해주셔서 만들어주셨는데 죄송하네…“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지, 괜찮다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내게 “엄마가 만들어준 거라 이런 말하면 자기가 기분이 좀 안 좋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니야~” 혹은 “응~”과 같이 그냥 알겠다는 말을 할 수도 있는데, 왠지 나도 남편이 그렇게 말해준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그냥 그 말에서 나에 대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저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말 덕분에 나는그 순간을 기억하며 이렇게 글도 쓰고 싶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그냥 한 말이었는데, 남편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순간 ‘어? 내가 한 말이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말이었나?’하고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말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는 별뜻 없이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만약 내가 그 말에서 나에 대한 마음이나 어떤 따뜻함이 느껴졌다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그 말을 들은 사람과 나 모두 그 순간만큼은 따뜻한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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