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하는 첫 생일, 생일이 불편하지 않았던 날 (서촌 비텔로 소띠, 콤포타블 안국, 라뽀즈 비건 케이크)
3/25 (월)
비가 오는 날이었다.
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반차를 쓰고 남편이 왔다. 왜 조금 늦게 오나 했는데 나를 향해 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이해가 됐다. 그의 손에는 꽃이 들려있었다. 그걸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나는 왜 이런 날 꼭 꽃을 받고 싶을까. 아무튼 받고 싶다. 이것이 내게는 특별한 날의 징표인 것 같다.
브레이크 시간이 되기 전에 얼른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처음에는 양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가고 싶은 곳이 월요일 휴무라 메뉴를 변경했다. 화덕피자가 먹고 싶어 이곳에 왔다. 이곳은 월요일 휴무를 하지 않아 어찌나 다행이던지... 여기 외에도 월요일에 휴무하는 식당이 꽤 많아서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비텔로 소띠 vitello sotti>
♠ 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길 14-14
♠ 영업 시간 (평일 브크 15:00 ~ 17:00, 주말 브크 15:30 ~ 16:30, 라스트 오더는 1시간 전)
· 월 ~ 금 11:30 - 21:30
· 토 ~ 일 11:30 - 21:00
비가 와서, 브크 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호다닥 들어오느라 가게 외부 사진을 못찍었네
원색의 비비드한 색으로 채워진 실내, 이탈리아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화덕도 있고 자격증도 있었다. 저 화덕.. 뭐든 넣으면 맛있을 거 같은 마법의 공간 같다.
우리는 피자 하나, 파스타 하나 그리고 까눌리, 제로콜라를 주문했다.
내가 그에게 받고 싶었던 꽃! 생각보다 큰 꽃다발을 사왔다. 나는 뭐 이렇게 큰 꽃다발을 사왔냐고 했다. 더 작아도 되는데. 그는 이왕 사는 거 그래도 좀 풍성해보이는 걸 사고 싶었다고 했다. 카드도 있었다. 귀여운 카드!
마르게리따 Margherita 22.0
피자가 먼저 나왔다. 항상 피자 먹으러 가면 토핑이 뭐가 많이 올라간 피자를 먹곤했다. 왜냐면 이왕 온김에 시그니처나 아무튼 맛있는 걸로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은 가장 기본적인, 맛있는 피자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마르게리따를 주문했다. 으아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였다.
보타르가 Bottarga 28.0
파스타는 오일파스타를 시켰다. 새우, 관자, 어란으로 맛을 낸 소띠 시그니처 오일파스타라고 한다. 파스타 색을 보니 감칠맛이 나는 맛있는 파스타일 거 같았다.
역시 감칠맛이 나는 맛있는 파스타였다. 오일파스타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고 은은하게 매콤한 맛도 조금 났다. 위에 올라간 후레이크와 파가 파스타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새우도, 관자도 연하고 맛있었다.
다만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배부르게 먹고 싶다면 피자 하나에 다른 메뉴 두 개를 시켜먹으면 좋을 것 같다.
까놀리 5.0
마지막으로 후식으로 까놀리 하나를 나눠먹었다. 까놀리는 리코타, 시트러스, 잔두야, 피스타치오 4가지 맛 종류가 있다. 이 중 우리는 헤이즐넛 초코 크림이 채워진 잔두야를 시켰다.
한쪽에는 뭔가 바삭한 파이지가 묻혀있는 거 같고, 한 쪽에는 초코청크가 묻어있다. 나이프가 같이 나오지만 까놀리 겉면이 과자처럼 바삭하기 때문에 나이프를 쓸 때 조심해야 한다. 팍! 하고 잘린다.
생각보다 초코가 엄청 진하지 않아 맛있었다. 헤이즐넛 초코크림의 크리미함과 겉의 과자 부분이 잘 어울렸다. 다음에 또 오면 다른 맛을 먹어보고 싶다.
원색의 비비드함이 표현된 내부. 뭔가 일상과는 다른 곳에 온 것 같아 기분이 리프레시되는 것 같았다.
중간에 일이 하나 생겼다. 남편이 꽃을 사고 꽃집에 지갑을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만난 장소로 돌아갔다. 때문에 남편의 계획이 틀어졌고 그는 좀 괴로워했다. 나는 뭐 괜찮았다.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괜찮다 말하고 그래도 남은 하루를 잘 보내는 편이 좋으니까. 좀 고민하다 여기서 커피를 한 잔하고 케이크를 사러 집 주변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콤포타블 광화문>
♠ 위치: 서울 종로구 종로 5길 46
♠ 운영 시간
· 평일 08:00 ~ 22:00 (30분 전 라스트 오더)
· 주말 11:00 ~ 19:00
콤포타블이라는 카페는 콤포타블 남산 때문에 알게 되었다. 뷰가 엄청 예쁜 카페로 알고 있다. 커피도 맛있다는 리뷰에 와봤다. 매장은 심플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나는 아이스 라떼, 남편은 밀크티 그리고 휘낭시에를 주문했다.
우드톤의 심플하고 따뜻한 느낌의 매장이다. 이층도 있는데 계단이 너무 가파르고 좁아서 도저히 음료를 들고 올라가고 내려올 자신이 없어서 일층에서 먹기로 했다.
머신이 굉장히 좋아보였다. 내 기준에 라떼는 맛 없진 않았지만 특별히 맛있지 않았다. 뭔가 산미 있는 원두의 단맛이 잘 어우러지지 않는 맛이었달까. 의외인 것은 남편이 밀크티가 맛있다고 했다. 마셔보니 얼그레이 특유의 향, 베르가못 향이 잘 표현된 맛이었다. 보통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같이 향에 호불호가 없는 걸 밀크티에 많이 쓰던데 신기했다.
그리고 휘낭시에는... 휘낭시에는 아닌 것 같았다. 간단하게 곁들여 먹기 좋은 단맛이 나는 빵 정도.
그리고는 뜬금없지만 조계사를 다녀왔다. 남편은 불교 보이다. 매달 말에, 월급날 이후 한 번은 꼭 조계사를 찾아 초와 향에 불을 붙여 가족들을 빌어준다. 마침 월급날이었고 이 근처에 있어 오게 되었다. 나는 사실 무교인데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니 하게 된다. 못해도 한 네 번 이상을 따라 온 것 같다.
남편: "오늘 여길 오게 되었네"
나: "그르게, 여기 오려고 오늘 좀 헤매게 되었나보다"
이런 농담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라뽀즈>
♠ 위치: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1층
♠ 영업 시간
· 월 - 토: 12:00 ~ 22:00
· 일: 13:00 ~ 21:00
남편은 이곳 케이크가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그리고 내가 비건 좋아하니까 꼭 오자고 했다. 이곳은 모든 케이크를 글루텐프리에 비건 케이크를 판다. 그래서인지 가격대는 8,000원 대로 좀 있는 편이다.
케이크 말고도 작은 디저트류도 판다. 재밌는 글도 있었다. 비건빵이라고 살이 안찐다는 건 아니라는 것. 건강한 디저트일 뿐이다.
가장 좋았떤 것은 귀여운 초도 함께 팔고 있다는 것...
따뜻한 분위기를 가진 내부를 구경하다보니 포장이 다 되었다. 프라이플라워도 꽂아주시다니 예쁘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꽃다발을 정리해서 꽃병에 담고, 남편은 저녁을 준비해주었다.
그래도 생일날이라며 고기를 굽고 준비해주었다. 맛있는 걸로 가득한 저녁 생일상이 차려졌다.
소금구이 반, 양념 반으로 구워온 그. 그는 이렇게 일상적인 작은 부분에 정성을 쏟는 사람이다. 나는 그 정성을 사랑이라고 단번에 알아차린다.
어차피 회사에서 홀케이크도 나올 것이기에 조각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생일 축하노래도 같이 불렀다.
나중에 노래부르는 모습을 추억하면 좋을 거 같아 삼각대를 놓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 영상 중 한 장면을 캡쳐했다. 소원도 빌었다.
이 날은 내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이었다. '처음'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좋았는데, 떠올려 보니 이번 생일이 내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편안한 날이었다. 왜냐면 그동안의 내가 떠올리는 생일은 축하를 받아도 좋은 감정이 크기보다는 누군가를 부담을 주는 것 아닌가라고 느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낀 건 내 문제도 있고 상황적인 측면도 있다. 내 문제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일에 나를 축하하는 마음을 그대로 받지 못하고 되갚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때로는 축하받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있었다. 이러니 생일을 편하게 즐길 수 없었고 생일이 그저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온전히 축하하는 마음을 부담없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되니 가장 편안한 생일을 비로소 맞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역시 내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 최고다. 그동안 심리학 공부를 하며 스스로 적용하며 조금씩 변화온 덕분인 거 같아 내심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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