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서 생기는 4가지 문제 (미숙한 착함이 만드는 문제)

2023. 1. 31. 23:43

앞서 미숙한 참함과 성숙한 착함에 대해 알아봤다. 혹시 아직 읽어보시지 못하신 분들은 여기 를 클릭해보세요.

미숙한 착함이란 자기희생을 둔 착함을 말한다. 이 미숙한 착함에는 보상심리가 있다고 했다. 내가 희생해서, 나를 참고 착함을 베푸는 것이니 상대방이 이걸 갚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해준 만큼 상대방이 되갚아주길 바라거나, 아니면 나의 배려와 희생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착함, 성숙한 착함이 아니다.

 

그런데 과거의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숙한 착함을 '착하다'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나 싶다. 나를 뒤로한 채 누군가에게 맞춰주면 그 모습을 착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좋은 점도 있다. 나를 숨기고 뒤로한 채 인간관계를 맺으면 그냥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보니 착한 사람이 두려워하는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나를 숨기고 갈등을 줄여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지금 당장 편하게 사람들과 지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미숙한 착함으로 살게 되면 이런 문제점이 있다.

 

 


 

1. 관계의 불편함을 잘 못 견딘다.

미숙한 착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관계의 불편함을 유독 잘 못 견딘다.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갈등, 불편함이 생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관계의 불편함도 견딜줄 알아야 한다. 미숙한 착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작은 갈등도, 불편도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이는 빠른 사과로 이어진다. 이 상황의 잘잘못을 이성적으로 따지기도 전에 마음이 불편하니까 상대방의 잘못이 있어도 내게서 잘못을 찾는다. 그저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기 위해 사과를 한다. 착한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이유가 있다. 이 관계의 불편함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고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닌 덮어버리자는 '회피'이기 때문이다. 미숙한 착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웃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2. 자존감이 무척 낮다.

이러한 갈등 해결 방식은 순간적인 불편함과 갈등은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를 점점 키울 수 밖에 없다. 자신을 억압하고 희생하는 관계방식은 스스로에게 더 큰 어려움을 만들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점점 자기를 잃어가고, 무기력해지며 스스로를 점점 미워하게 된다. 뒤돌아서서는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냐고 스스로를 꾸짖게 된다.

그렇다보니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보잘것없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사랑 받기 위해 나는 뭔가를 해야 해.'라는 부정적 자기평가를 하며 사람을 대한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자신보다는 언제나 상대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상대에게 쉽게 동조한다. 습관적으로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좋겠네요" "먼저 말씀하세요"라고 이야기하기 쉽다. 이들은 상대를 지나치게 존중하며 자신은 존중하지 않는다.

 

 

3. 나의 감정, 기호, 취향을 모른다.

갈등, 관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고 상대에게 맞추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정작 자신의 감정이나 기호, 취향 등을 잘 모른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걸 왜 내가 몰라. 나도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가 되면 이야기 하게 될 거야. 단지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상황이라 이야기하지 않는 거야' 하지만 정작 내 감정이 어떤지 표현해야 할 때, 무언가를 골라야 할 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골라야 할지 길을 잃었다. 

언제까지나 상대방이 혹은 다수가 좋다고 하는 것을 따를 수 없다. 왜냐면 이 방법은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아닌 어딘가의 소속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묻어가지 못한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 내 경험에 의하면 20대보다는 30대에 내가 오롯이 결정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20대부터 내가 하나씩 결정하며 내게 좋은 삶을 만들어가면 좋겠지만, 30대부터 만들어가도 늦지 않다. 과거의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분주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때론 상대를 존중해줘야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잘 표현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었다.

 

 

4. 상대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는다.

나는 언제나 사랑이 어려웠다. 대학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은 하나 둘 씩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소개팅도 여러번 해봤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면 상대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둘 다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나 세 종류였다. 나는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주길 원했다. 그런데 또 누군가 다가오면 나는 그 사람을 밀어냈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러는지. 

 

이런 것을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쇼펜하우어 책에 나오는 고슴도치 이야기이다.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모여들지만,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의해 찔리게 된다. 이렇게 서로의 몸에 있는 가시들로 인해 추위와 고통 사이에서 고민을 하던 중,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적정한 거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타인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인간관계의 두려움으로 인해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나는 남녀관계에서 고슴도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한 번은 남들이 다 하는 연애가 잘 안되니까, 나는 상대방이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그냥 순응할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나에게 좀 무례하긴 하지만 이 사람이 날 받아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 하지만 이내 이건 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접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일이다.

 

미숙한 착함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 보다는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다. 나를 사랑해주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싶어한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일방적인 보살핌을 받고 의존하는 애착일 뿐이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건 사랑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 되면 일방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 사랑을 주고 받아야 하고, 그 사이에는 책임감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미숙한 착함을 착하다는 의미로 알게 되면 생기는 네 가지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 내가 미숙한 착함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 지금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다면 벗어나려는 노력을 시작할 때이다. 물론 마음 먹는다고 바로 미숙한 착함이 성숙한 착함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나의 애착 유형이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 성인이라면 나는 나를 위해 장기적으로 내가 옳은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삶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미숙한 착함을 버리고 나다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계속해서 천천히 적어보려 한다. 물론 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분명 나아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자. 나도 다른 사람처럼 내 기준을 갖고, 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 책 <관계를 읽는 시간>을 참고했습니다.

 

 

 

반응형

BELATED ARTICLES

more